상단영역

본문영역

수통골~진잠 산장산 둘레길

2021. 04. 22 by 차철호

   [차철호의 #길]   
산장산 둘레길
혹은 대전둘레산길 10구간

애초 계획은 대전둘레산길 10구간이었다. 수통골에서 빈계산 쪽으로 올라 빈계산→임도→범바위→용바위→임도→성북산성→산장산→방동저수지 입구까지 가는 대전 서남부 라인. 타슈 타고 한밭대 앞으로 가서 반납하고 수통골 출발, 방동저수지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계획을 바꾼 건 산장산 지나 진잠초등학교 방향 이정표를 본 시점. 진잠동행정복지센터 근처에 타슈 스테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였다. 타슈 타면 천천히 가도 40분이면 집에 갈 수 있는데…. 그래, 타슈를 타자. 진잠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오늘 구간의 하이라이트 지점. 꼭 저 바위 위에 올라보시라.
오늘 구간의 하이라이트 지점. 꼭 저 바위 위에 올라보시라.
오늘의 경로. 9㎞ 남짓. 느릿느릿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늘의 경로. 9㎞ 남짓. 느릿느릿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이 길을 안 지는 얼마 안 됐다. 불과 2~3년. 수통골 오면 거의 비슷한 코스, 도덕봉→자티고개→금수봉→빈계산 한 바퀴. 늘 그랬다. 그러던 어느 봄날. 빈계산 분기점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성북동산성이 궁금했다. 방동저수지까지 가볼까, 호기심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가끔 나는 SNS에서 '선물'이란 표현을 쓴다. 기대하지 않은 영화가 기대 이상의 감동이나 재미를 줄 때, 기대하지 않고 오른 산에서 기대 이상의 풍경을 맛볼 때, 기대치 1도 없었던 만남에서 플러스 100 상황이 펼쳐질 때의 상황. 이 날 그랬다. 선물 같은 길.

빈계산으로 가는 길, 초반 오르막 러시 이후 잠시 휴식 타임.
빈계산으로 가는 길, 초반 오르막 러시 이후 잠시 휴식 타임.

   대전 서남부 파노라마   
   대전 둘레산이 한눈에   

#1. 빈계산으로

집 근처에서 대전 공영자전거 타슈를 대여한다. 원신흥동에서 진잠천-화산천 따라 수통골로 향한다. 30여 분 달려 한밭대 앞 도착. 수통골 주차장에서 오늘 여정을 시작한다. 빈계산 정상(414m)을 향해 출발, 오늘 여정의 최대 난코스 1.8㎞가 시작됐다. 초반부터 거친 숨소리 오르막. 만만찮은 경사. 헉헉댄다. 짙어진 초록과 새들의 노래 소리가 큰 응원이다. 발걸음마다 초록의 향연이 이어진다. 한바탕 오르막 행진이 끝나고 숨을 고른다. "벤치가 있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미스터리의 말이 기억난다. 묘한 아우라를 내뿜는 나무가 서있는 길목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다시 걸음을 내디딘다.

고도가 적당히 상승했는지 왼쪽 동쪽으로 대전 도심이 슬쩍슬쩍 모습을 보여준다. 확 트인 조망은 아니다. 계룡건설이 학하동에 건설 중인 아파트단지가 바로 아래 보이고 그 앞으로 뻗어있는 도로 따라 시선을 잡는 도안신도시. 목원대 근처에 한창 짓고 있는 건물들이 보인다. 도안 아파트단지와 월평공원 도솔산(207m) 너머 식장산(598m)과 보문산(457m)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의 우람한 덩치의 저 산은...? 서대산(904m)인가, 싶다. 만인산(538m)인지도 모르겠다.

살짝살짝 보이는 동쪽 조망. 식장산-보문산과... 오른쪽 뒤 산은 서대산?
살짝살짝 보이는 동쪽 조망. 식장산-보문산과... 오른쪽 뒤 산은 서대산?
빈계산 정상에 거의 다 왔을 지점, 계룡산 조망이 터진다.
빈계산 정상에 거의 다 왔을 지점, 계룡산 조망이 터진다.

1시간쯤 이어진 산행. 이 때다. 오른쪽으로 계룡산의 장쾌한 조망이 열린다. 도덕봉부터 금수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너머 삼불봉, 관음봉, 천황봉 라인이 시선을 잡는다. 오늘의 첫 감탄사. 날씨도 도와준다. 미세먼지 없는 봄날, '안구정화'를 체감한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여성 두 분의 대화. "하늘이 그림이야." "계룡산이 예술작품이야." 동감. 하늘과 맞닿은 봄날의 계룡산을 '즐감'한다. 이 조망포인트는 빈계산 정상에 다 왔음을 말해준다. 곧바로 빈계산 정상이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나름의 멋이 있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나름의 멋이 있다.

#2. 두 번의 산행

하루(4월 9일)는 맑은 날, 또 하루(4월 16일)는 흐린 날이었다. 1주일 전 산행 때 찍은 사진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 더 갔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그 1주일 사이 봄은 더 깊어져서, 활짝 피었던 산벚꽃은 빛을 감췄고 대신 초록의 선명도가 극강으로 치닫고 있었다. 맑은 날의 빈계산 조망포인트 조망이 수채화 같았다면 흐린 날은 수묵화였다. 흐렸던 그날은 바람도 많이 불었고 결국 빗방울까지 떨구어서 조망을 즐길 수가 없었다.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고... 우리가 걷는 인생의 길을 생각한다. 

언제나 햇살일 순 없잖아? 그치지 않는 비는 없을거야.
언제나 햇살일 순 없잖아? 그치지 않는 비는 없잖아.

때로는 세상이 봄날 같고
때로는 안개만 자욱하지
반짝였다 어두워졌다 
삶이란 그런 거야.
그치지 않는 비는 없잖아
언제나 햇살일 순 없잖아
부딪치며 깨달아가는 
삶이란 그런 거야.
가야 할 길 있기에 
헤매던 날들
꽃처럼 피우려고 
모질던 바람
아픔을 겪어야 
시작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지금 아프다면 
너의 계절이 오는 거야.
거친 바람은 
그렇게 꽃을 피운다.

신승훈 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중에서 -

 

#3. 성북동산성 3.1㎞

빈계산 정상에서 300m 정도 내려오면 이정표가 알려준다. 난코스를 넘긴 여정은 아주 평화롭다. 완만한 산줄기는 휘파람을 부른다. 이 길은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등산객이 거의 없다. 마스크를 내리고 활보한다. 봄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걸음걸음마다 신록이 바람을 타고 살갗에 와 닿는다. 산벚꽃과 진달래, 철쭉이 하이파이브 손을 내민다. 동쪽의 조망도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빈계산에서 능선 하나 넘어 1.3㎞, 성북동과 대정동을 잇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통과하면 세운 지 얼마 안 된 듯한 이정표가 길 안내를 한다. 성북동산성을 가리키며 다른 방향으론 '데크로드', '주차장'을 가리킨다. 지난 2019년 10월 개원한 국립대전숲체원이다. 숲체원 산책로와 맞닿은 숲길을 걷다보면 성북동과 대정동 갈림길을 만나고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면 봉덕사 조망터에 도달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사진으로 아무리 봐야 감흥이 없다. 그 암릉 위에 올라 직접 보시라.
사진으로 아무리 봐야 감흥이 없다. 그 암릉 위에 올라 직접 보시라.

조망터 인근에 있는 거대한 암릉 위에 서면 대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서남부의 널따란 논과 밭, 야산들이 눈길을 잡는다. 휴식을 주는 풍경화, 대전을 둘러싼 산들과 그 품에 안긴 대전 지도를 짚어본다. 휴대전화 카메라 줌을 당겨본다. 엑스포공원 한빛탑과 그 옆의 아파트, 한창 짓고있는 사이언스콤플렉스가 보이고 한참 떨어져 있는 신탄진 고층아파트도 보인다. 자연스레 2년 전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보문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오봉산-금병산-갑하산-구봉산-보문산으로 이어지는 대전둘레산길 12개 구간 걸었던 기억.  2년 전 가을 이 길 10구간을 동행했던 동지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4. 범바위와 용바위

능선은 이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방동저수지와 가까워진다. 봉덕사 조망터에서 10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범상치 않은 거대한 바위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범바위다. 산 아래 마을에서 바라보면 용맹한 호랑이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라는데 이 호랑이 바위가 마을을 지켜보면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준다. 5분 정도 더 가면 범바위보다 더 큰 바위를 만나게 된다. 용바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산장산 용바위에서 계룡이 나왔다고 쓰여 있는데 이 바위 역시 산 아래서 바라보면 70m가 넘는 웅장한 바위가 마치 용이 자세를 잡고 있는 모양새라고 한다. 한 여인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장군이 됐다는 전설도 전한다. 용바위에서 내리막을 타면 성북동과 대정동을 잇는 임도를 가로질러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성북동산성을 만나게 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성에 대한 설명 표지판이다. 대부분 허물어져 산성의 형태를 파악할 순 없다. 성북동산성 터를 지나면 이정표는 산장산 1.2㎞를 가리킨다. 

산장산 팔각정에서 본 진잠과 관저 일대. 조망이 선명해졌다. 구체적이다. 오른쪽 아래 진잠초등학교.
산장산 팔각정에서 본 진잠과 관저 일대. 조망이 선명해졌다. 구체적이다. 오른쪽 아래 진잠초등학교.

#5. 산장산(産長山)

265m. '낮은 산이지만 대동여지도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산이다. 유명해진 것은 산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유래비는 전한다. 능선을 걷다보면 산장산임을 알려주는 팔각정이 나오는데 이곳은 봉화터였다고 한다. 이 정자에서는 조망이 훨씬 앞당겨져 있다. 훨씬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진잠동과 관저동이 바로 앞에 펼쳐진다. 진잠초등학교 운동장이 바로 아래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정자를 뒤로하고 걷다보면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너럭바위에서 본 방동저수지와 뒤쪽 산줄기.
너럭바위에서 본 방동저수지와 뒤쪽 산줄기.
구봉산과 뒤쪽 산줄기.
구봉산과 뒤쪽 산줄기.
상사화길, 꽃무릅과 바람의 치유공간. 이란 이름이 붙여진 길. 편하고 아주 좋다. “이렇게 좋은 길이 있었구나.” 감탄사 연발한다.
상사화길, 꽃무릇과 바람의 치유공간. 이란 이름이 붙여진 길. 편하고 아주 좋다. “이렇게 좋은 길이 있었구나.” 감탄사 연발한다.

그 뒤로 방동저수지가 보인다. 왼쪽으론 구봉산 섹시한 능선이 유혹한다. 방동저수지 뒤편으로 아스라히 대둔산과 위왕산 자락이 손짓한다. 너럭바위를 찍고 진잠초등학교 방향 하산길을 택한다. 처음 가보는 길. 호젓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오감이 숨쉬는 걸음, “이렇게 좋은 길이 있었구나.” 감탄사 연발하며 9㎞ 남짓 일정을 마무리한다. 원내동 호남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면 산장산 유래비가 있고 그 옆엔 숲길 안내도가 있다. 오늘 걸어온 길 경로와 똑같다. 길 이름은 ‘아름다운 산장산(産長山) 둘레길’이다.   

 ich@kakao.com

    [ 차철호의 #길 ]     

 1. 눈내린 갑천습지길              
 2. 오후 3시의 노루벌길           
 3. 엑스포 夜行 : 한빛탑의 진화 
 4. 계족산 & 대청호오백리길     
 5. 장태산휴양림의 3월 달력      
 6. 4월엔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7. 수통골~진잠 산장산 둘레길   
 #. [사진첩] 봄비, 갑천습지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