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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 4구간 명상정원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②

2023. 02. 15 by 이기준 기자
[대청호의 재발견] 대청호오백리길 원점회귀 코스

① 물과 뭍의 경계, 우린 여기서 신선이 된다
대청댐→비밀의숲→지명산(지락정)→대청정→로하스캠핑장→로하스해피로드→대청댐
② 모래곶의 향연… 발길마다 포토존
명상정원 주차장→전망데크→홀로섬→추동습지 전망좋은곳→억새데크→명상정원 주차장

 

 

소비가 아닌 사색을 위한 힐링여행

흔히 여행에서의 만족은 ‘소비’를 통해 이뤄진다. 돈을 지불하고 만족을 사는 거다. 문화·관광콘텐츠를 구매할 때도, 유명 맛집의 음식을 먹는 것도, 심지어 관광지에 입장할 때도 적잖은 돈을 지불한다. 그러나 이런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관광의 여운은 대부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일부는 충동적 소비여행에 따른 부작용, 가령 얄팍해진 지갑 사정에 대한 걱정이나 피곤함·스트레스와 같은 것에 시달리기도 한다. 물론 이 역시 나름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지만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결국 한 번쯤은 ‘휴식을 위한 여행’을 갈망하게 된다. 물건을 사고, 관광콘텐츠를 즐기고,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보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휴식의 기회를 선사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그런 여행 말이다.

#. 힐링을 위한 사색(思索)

과연 ‘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쉬다’라는 단어는 어떤 상태에 있는 형용사가 아니라 어떤 상태에 이르기 위한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다. 그래서 쉰다는 것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다. 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잠을 자는 것일 수도 있고 가만히 앉아 TV, 스마트폰을 보거나 멍 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격한 운동을 하는 것을 쉬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 투성이인 업무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것, 흔히 휴가라는 것 역시 쉬는 방법 중 하나다. 다만 떠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그 여행 자체가 악몽으로 기억될 수도 있으니 욕심을 버리는 게 좋다. 이런 측면에서 사색은 가장 완벽한 쉼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조용한 공간만 허용된다면 물질적 소비 없이도 ‘나’ 자신의 내적 가치 추구하면서 정신적·육체적 만족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늘 오랜기간 회자되는 명언을 남긴 사람들은 고독이라는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여행’을 즐겼고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함에 있어 ‘독서’와 ‘사색’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사색하기 딱 좋은 곳

서울을 떠나 대전에 새로 둥지를 튼 사람들이 ‘대전으로 이주하기 잘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대청호다.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이 세상 모든 시름과 걱정을 다 받아줄 것만 같은 호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뭔가 인위적인 느낌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산책하며 사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만족감을 드러낸다.

대청호반을 잇는 대청호오백리길 21개 구간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곳은 바로 ‘모래곶의 향연’이 일품인 4구간이다. 마산동 윗말뫼에서 시작해 5구간의 시작점인 신상교까지 12.5㎞인데 이 코스 중에서도 백미는 대청호자연수변공원 등이 있는 추동·가래울 인근이다. 명상정원한터1에서 출발해 호반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원점으로 돌아가는 코스(약 7㎞)인데 산책·트레킹하기 좋게 길이 잘 정비돼 있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이곳이 영화 촬영 명소가 된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져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호반의 정취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이 감상할 수 있다. 오감을 모두 열어놓고 자연을 벗삼아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 핫 플레이스, ‘명상정원’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가운데 권상우·김희선 주연의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는 대청호 풍광의 백미로 꼽히는데 최근 이곳이 ‘명상정원’이라는 이름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대청호 트레킹을 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건데 관광 인프라로서의 기능도 있지만 사색의 묘미를 살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명상정원한터1 주차장에서 데크길을 따라 명상정원 쪽으로 향한다. 금세 2층 루(樓) 형태의 정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사이로 대청호 한가운데 홀로 솟아있는 자그마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섬이 바로 이번 ‘사색 여행’의 방점이다.

데크길을 걷는 내내 대청호의 풍광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위태롭게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있는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잔잔한 바람에 ‘바르르’ 떨며 ‘스르르륵’ 귓전을 자극하고 바람에 실려온 맑은 자연의 향기는 코를 관통해 몸속에 퍼지며 마음을 치유한다. 데크길의 끝자락, 전망대가 보인다.

명상정원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명상정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그 풍경을 품은 명상정원 그 자체도 아름답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상 색채감은 떨어지지만 스산한 가운데서도 대청호의 풍경은 빛을 발한다. 전망대 한켠, 어느 유치원 아이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통나무 새집을 만들어 걸어놓았다. 또 새들이 쉴 수 있는 모빌을 걸어놓기도 했다. 이 아이에게 있어 새집과 모빌을 만들어준 경험은 과연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겨울 가뭄에 대청호 수위도 많이 낮아졌다. 해변을 걷듯 호숫가 모래를 밟으며 명상정원으로 향한다. 타이밍이 좋았다. 명상정원에 들어서자 날씨가 화창해졌다. 오전 내내 해를 가렸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자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구름 사이로 햇님이 빼꼼히 얼굴을 드러내자 대청호에도 다시 생기가 돈다. 늘 푸르름을 유지하지만 갈빛에 묻혀 있던 소나무와 대나무도 그제야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풍스러운 돌담 안에 마련된 대청마루며, 통나무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며, 명상정원에 마련된 모든 것들이 입체감 있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명상정원은 대청댐 조성 당시 수몰민들의 생활상을 모티브로 꾸며졌단다. 나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 명상정원의 끝자락은 ‘홀로섬’으로 불리는데 대청호 수위가 높아지면 길이 끊겨 섬이 된다.

#. 또 하나의 홀로섬

명상정원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조망포인트로 향한다. 생뚱맞은 곳에 우물 하나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다시 길을 잡는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대청호의 풍경은 여전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물에 대한 궁금증을 금세 잊게 할 정도로 신비로운 풍경이다. 억새 흩날리는 데크길을 따라 마산소한터에 도달한 뒤 다시 대청호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오감을 열어놓고 마실가듯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명상정원에서 홀로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뭐든지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한 법이다. 이번 사색 여행, 호반의 마지막 끝자락에 선다. 아까 그 ‘방점’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이 또 다른 홀로섬을 감상하며 깊은 사색에 잠겨보라고 친절하게 벤치가 마련돼 있다. 충북 단양의 명소, ‘도담삼봉’까진 아니라도 사색의 영감을 주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단순히 몇 장의 잘 나온 사진만으론 형용할 수 없는, 천의 얼굴을 가진 매력덩어리라고나 할까?

한참을 멍하니 ‘또 다른 홀로섬’을 감상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 불현듯 ‘생뚱맞은 우물’의 존재가 뇌리를 스친다. 검색해보니 영화 ‘7년의 밤’ 촬영에 쓰기 위해 만든 거란다. 그러고 보니 대청호는 수려한 풍경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 명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지난해 7월 종영한 드라마 ‘클리닝 업’에선 주인공들이 힘들 때마다 찾는 힐링 휴식처로 대청호가 등장했고 특히 마지막화 엔딩신도 이곳 4구간 맞은편 5구간에서 촬영됐다.
다시 길을 나선다. 추동생태습지공원으로 향한다. 가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출발점까진 도로 옆길을 따라 불과 5분 남짓이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이기준, 김동직 기자
드론촬영=김형중 기자

 

‘가래울’ 마을 이야기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의 거점인 대전 동구 추동(秋洞)은 지금은 물에 잠긴 옛 동면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동네다. 중간에 위치했다고 해서 ‘중추’(中秋)라고 했고 ‘큰말’(큰 마을)로도 불렸던 것으로 미뤄보면 인근에선 꽤 규모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엔 또 ‘가래울’(가래골)이란 지명도 남아 있다. 가래나무가 많아서 그렇다. ‘가래울’이란 지명이 대청호 조망 좋은 곳에 자리한 식당 간판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가래울이란 지명은 제법 오랜 기간 이어져온 듯하다.

가래나무를 추자나무라고도 했으니 추동이라는 지명 역시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어찌된 일인지 한자 지명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상하다. 가래울로 불리던 곳을 한자로 쓰려면 추자나무를 뜻하는 ‘楸’자를 음차 했어야 하는데 가을을 의미하는 ‘秋’자를 가져다 써버렸다. 추자나무(가래나무)마을이 순식간에 가을마을로 바뀐 거다.

그런데 마을 이름 탓일까. 현재 추동의 모습을 보면 추자나무마을보단 가을마을이 더 어울린다. 추동(秋洞)이라는 동네 이름을 따라 동네의 정체성 역시 가을에 어울리는 곳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곳은 푸른 대청호를 배경으로 억새 물결 넘실대는, 가을과 찰떡궁합인 동네의 매력을 발산한다. 이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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