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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엔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2021. 04. 06 by 차철호

   [차철호의 #길]   
4월엔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봄, 벚꽃보다 대청호

 

그 젊은 시인은 이 곳에서 그렇게 읊조렸다.
그 젊은 시인은 이 곳에서 그렇게 읊조렸다. "호수에 풍경을 풀었다. 지상의 시간이 수면을 타고 번진다. 차분하고 고요하다."

4월엔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이 진리다. 벚꽃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식장산 아래 세천공원과 송중기 배우의 친가가 있는 세정골을 지나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에 진입한다. 꽃 터널, 몽환적인 꽃잎의 유혹. 줄지어 모여든 사람들은 봄의 왈츠를 즐긴다. 벚꽃도 좋지만 조금만 대청호 안쪽으로 들어가 보시라, 벚꽃보다 더 눈부신 대청호의 봄날 유혹이 아찔하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의 흥진마을 둘레길. 지인인 미스터리가 대청호오백리길에 대해 잘 쓰는 표현, '궁극의 힐링'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벚꽃엔딩이라 아쉬워하지 마시라, 엔딩 없는 궁극의 힐링이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경유지 세천공원. 도심의 벚꽃풍경과 다르다. 가볍지 않고 고풍스럽다.
첫 번째 경유지 세천공원. 도심의 벚꽃풍경과 다르다. 가볍지 않고 고풍스럽다.

#1. 우아함, 세천공원의 벚꽃

도시철에 자전거를 싣고 판암역으로 간다. 판암역에서 출발, 벚꽃 흐드러진 길을 달려 식장산 입구 세천공원을 먼저 들렀다. 도심의 벚꽃풍경과 달리 고풍스러운 세천공원의 벚꽃 뷰. 사람들도 많지 않아 벚꽃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세천공원 지나 세정골이란 작은 마을을 통과하다 보면 드라마 빈센조 사진이 많이 걸려있는 구간을 만난다. 길가에, 또 어느 집 입구에도 정원에도 어느 배우의 사진이 많이 걸려 있다. 송중기 배우의 친가다. 국내 팬들은 물론 해외 팬들도 찾아오는 송중기 코스가 됐다. 조금 더 달리면 경부선 세천역 인근 터널을 통과하고 대청동복지센터-세천삼거리를 지난다. 세천삼거리부터 나아가지 못하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진입.

송중기 배우의 조부모가 살던 친가. 송중기 씨가 휴식 차 가끔 찾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핫 플레이스가 됐다.
송중기 배우의 조부모가 살던 친가. 송중기 씨가 휴식 차 가끔 찾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핫 플레이스가 됐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진입,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오후 2시 구름 조금.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진입,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오후 2시 구름 조금.

#2. 벚꽃, 대청호

금요일(4월 2일)인데도 사람들이 참 많다. 승용차들도 줄지어 들어온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꽃그늘 아래 모두가 모델이 되고 사진작가가 된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계획대로 나는 왼쪽 길로 접어들어 흥진마을 갈대밭 추억길로 향한다. 한적한 길의 여유를 만끽하며 느릿느릿 달린다. 대청호 물이 많이 빠져 낯선 뭍 풍경을 보여주는 곳에서 잠시 머문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엔 이 곳도 어느 마을이었겠지.' 이 마을 사람들이 살던 모습들이 흑백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멀리서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오동선 벚꽃길 라인도 시선을 붙잡는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백골산성낭만길)의 시작점인 흥진마을 갈대밭 추억길은 편한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청호를 옆에 두고 3.1㎞, 산을 품은 길 위의 호수를 대면한다. 자전거를 타다 끌다 반복한다. 눈길을 붙드는 뷰 포인트가 수시로 출몰한다.

물이 많이 빠져 낯선 뭍 풍경을 보여주는 곳에서 잠시 머문다. 일기예보는 구름많음, 이라 했는데 맑아지는 하늘. 하늘에도 물감을 풀었다.
물이 많이 빠져 낯선 뭍 풍경을 보여주는 곳에서 잠시 머문다. 일기예보는 구름많음, 이라 했는데 맑아지는 하늘. 하늘에도 물감을 풀었다.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오동선 벚꽃길 라인도 좋다.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오동선 벚꽃길 라인도 좋다.
누워있는 자전거 찾기.
누워있는 자전거 찾기.

어느 젊은 시인은 이 길의 풍경을 이렇게 읊조렸다.

호수에 풍경을 풀었다. 
지상의 시간이 수면을 타고 번진다. 차분하고 고요하다. 
호숫가를 걷는다. 빈손을 움켜잡는다. 
여과되지 않은 기억들 바람으로 치환된다. 
계절은 계절을 밀어내고 
쥐고 있는 과거마저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멀어지면 
깊어지는 마음 
한 숨을 깊게 내쉬면 슬픔이 방목되고 
연무와 함께 날아간다. 가슴이 찬 공기로 부풀어 오른다.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 것들 
호수는 늘 같은 모습으로 당신을 마주한다. 
비가 땅을 두드리면 잊혔던 이름들이 호명되고 
흩어져 있던 봄이 빈 가지마다 맺히면 
어느새 돌아누운 섬 
언젠가 만개할 날만을 기다리며 
눈을 감는다. 바람이 살갗의 온기가 되어 
뺨을 스친다. <환절기 - 김미진>

자전거를 끌고 물과 뭍의 경계에 선다.
자전거를 끌고 물과 뭍의 경계에 선다.
위에서 보는 풍경이 수묵화 같다면 아래에서 보는 풍경은 아이맥스 스크린이다.
위에서 보는 풍경이 수묵화 같다면 아래에서 보는 풍경은 아이맥스 스크린이다.
굉장히 맑다.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굉장히 맑다.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3. 행복 바이러스

투명한 청록 물빛이 유혹하는 쉼터 벤치 앞에 섰다. 사진 좀 찍어야지, 삼각대를 설치한 뒤 자전거를 끌고 아래로 내려간다. 위에서 보는 풍경이 수묵화 같다면 아래에서 보는 풍경은 아이맥스 스크린이다. 사진과 영상을 찍고 나서 삼각대를 막 접으려고 할 때였다. 옆 벤치에 앉아 계시던 노부부가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저 아래로 내려가신다. 바닷가 백사장 같은 모래밭. 검은 파마머리 아내가 남편에게 손짓한다. “어서 오셔봐, 감촉이 정말 좋아.” 멀찌감치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걷는다. 재촉하는 아내, "얼른 와 보셔." 

한 부부의 행복 바이러스.
한 부부의 행복 바이러스.

망설이던 남편도 천천히 신발을 벗는다. 바닷가 걷듯 모래 위 가벼운 발걸음. 온몸에 전해지는 맨발의 상쾌함이 전이된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근다. 표정이 멀리서도 보인다. 웃음꽃, 평화롭다 여유롭다, 행복해 보인다. 보고 있는 나도 행복해진다. 대청호의 행복 바이러스.

매 두 마리 찾기.

흥진마을 둘레길 절반을 넘어섰다. 이제 시선은 서쪽으로 호수 건너 주산동 방향을 가리킨다. 산벚꽃이 한 폭 풍경화다. 옆으로 신상교가 보이고 그 뒤엔 식장산이 멀리서 손짓한다. 구름 배경 위 매 두 마리가 유유자적 공중비행을 즐기고 있다. 물가를 걷고 있는데 뒤쪽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중년 여성 네 분이 다가왔다. 곧바로 감탄사가 이어진다.

"좋다, 좋아. 너무 평화롭네~~~."
"우와~, 이런 게 힐링이지."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목소리, 행복바이러스가 번진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오픈 조망이다. 신상교 머리 위 벚꽃과 식장산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온다. 신상교 아래,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날머리-5구간 들머리 지점에 섰다. 3.1㎞, 짧지만 감흥은 길게 남은 흥진마을 둘레길이었다. 자, 이제 오동선 벚꽃길 타고 방축골로 가 볼까.  

#4. 물 위를 걷듯

주산동에서 호숫가로 나오는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은 신상교 앞에서 둑방길로 이어진다. 대청호 대전권역의 최남단으로, 수위가 높으면 잠기는 길이다. 꽤 길다. 양쪽 호수의 물이 바람에 일렁인다. 자전거는 탈 수 없는 노면이어서 걷기로 했다. 물 위를 걷듯 걷는다.

물새들이 착륙과 이륙을 반복한다. 새들의 물 위 슬라이딩 착륙과 타다다닥 스타트 하는 이륙은 언제 봐도 걸작이다. 신상교 위로 올라가 대청호와 둑방길을 본다. ①주산동으로 이어진 둑방길과 ②신상인공습지로 가는 왼쪽 길, ③5구간 흥진마을 시작점을 잇는 오른쪽 길이 삼거리를 이루고 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나는, 오른쪽 길을 거슬러 가서 오동선 벚꽃길을 달려 방축골로 갈 것이오.

#5. 유명세(有名稅)

: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탓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이나 불편을 세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오동선 자전거 탄 풍경은 말 그대로 벚꽃물결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꽃비를 선사한다. 벚꽃터널 도로를 따라 절골마을 입구에 선다. 1500년 전 백제와 신라가 패권을 다툴 때 지금의 대청호는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는데 한 스님이 죽은 병사들을 위해 이곳에 절을 세우고 이들의 넋을 위로했다고 해서 절골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절골마을 벽화를 감상하며 방축골로 향한다. 오르막이다. 고개 하나를 넘는다. 고개의 끝자락, ‘꽃님이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왕년에 대청호반을 주름잡던 곳, 연인들이 북적이던 풍경은 사라지고 지금은 흉측하게 변한 건물만 남아있다. 다시 일방통행 길을 잡아 내리막을 신나게 달린다. 

방축골.  대전 동구 신하동과 신촌동 일원의 대청호반 핫플레이스다. 한 카페가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인근엔 카페가 더 들어섰다. 방축골의 땅끝, 호수 건너 대청호오백리길 3, 4구간과 닿을 듯 반도처럼 살짝 뻗어나간 곳이 있다. 경치가 좋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곳인데 이번엔 접근조차 못 했다. 그 곳으로 가는 길목이 공사 중이었다. 설마 또 카페가 들어서는 건 아니겠지? 호수 건너 3구간의 관동묘려와 그 사이 햄버거섬,이라 우리끼리 부르는 그 섬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는데 아주 아쉬웠다. 그나저나 햄버거섬 외형이 많이 바뀌어 있는데 이유 아시는 분? 자작나무 심은 것처럼 하얗게 보인다.

햄버거섬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햄버거섬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를 이 영상이 알려주는군요. : 동구U_대전 동구 공식 채널

돌탑이 보이는 곳. 강아지 두 마리 찾기. 전혀 짖지 않아서 사진 찍을 땐 몰랐다. 두 녀석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청호반의 보석,이라 할 만한 방축골.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하는 핫 플레이스도 좋지만 개발과 건축만 앞세워선 안 된다. 방축골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축골에서 나오는 길, 건물과 건물 사이 대청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사진작가들 출사지로 유명한 돌탑이 보인다. 돌들이 층층이 쌓인 두 개의 탑이 있고 그 사이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모습이 대청호반의 운치를 더한다. 해 질 녘 호수에 비치는 노을이 아주 아름다운 곳, 자전거탄풍경이 부르는 노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자연스레 입으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너에게 난 해 질 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 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  

 

다시 벚꽃터널로 들어선다. 어둑어둑해진 오후, 자동차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벚꽃길에 조명이 켜진다. 사람들 마음 속에 불빛 하나씩 담는다.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  해시태그가 SNS를 지배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요 며칠간 나를 붙잡고 있는 생각을 복기해본다. 누구나 그렇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쉬 낫지 않는다. 나름 탄탄한 마음의 쿠션이 있다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구나. 신뢰에 대한 보답으로 권력추종 변신을 하는 그는 더 안타깝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정치를 하려 하고 간신배처럼 배신과 변신을 거듭한다. 신뢰의 믿음이 깨질 때 상처는 더 깊어서 치유가 만만찮다. 실망의 생채기는 다시 '사람' 존재를 생각게 한다. 사람다움을 생각해 본다. 나 또한 그렇게 얍삽하게 살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본다. 

ich@kakao.com

    [ 차철호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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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4월엔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 봄비,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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